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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카데미는 매일 두 번의 예배와 주 1회 기도모임을 드리고 있다.아침예배는 직원들과, 점심예배는 아카데미 수강생에게 복음을 전하며 예배드리고, 목요일 저녁에는 기도모임을 갖고 있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배자를 찾는 일이 힘이 들었다.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도 습관적으로 참석하고, 교회 안 나가는 사람들은 예배 자체에 아예 무관심하고 비판적이며 다양한 이유와 신념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을 느끼며 가슴 아파하고 있을

하루하루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며 살아가기에‘믿음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내게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그래서 믿음을 묵상하면서아브라함의 믿음,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의 믿음, 그리고 나의 믿음을 때때로 비교해본다.그리고 기도할 때 ‘아브라함의 믿음, 제자들과 바울의 믿음을 저에게 허락하소서.그들이 순종했던 것들을 저도 순종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라며 울부짖곤 한다.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하나님이 살아계실 뿐 아니라 늘 자신의 삶에 관여한다는 것을 믿고그분에게만

2013년 한 기독 경영자 모임에 참석해 ‘회사 예배’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예배에 참석하는 직원에게 별도의 수당을 주기도 했다는 분,시도는 했지만 직원들의 불만으로 포기했다는 분도 있었다.회사에서 예배를 드리면 직원들과 거래처로부터 안 좋은 반응이 나오기 때문에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고,대체적으로 회사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망할 위험이 많다는 의견이었다.‘하나님, 제가 매일 아침과 낮 예배를 드리겠습니다.창립 때부터 매일 아침예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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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 적은 돈으로 미용실을 열었는데 손님이 오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그러나 그때도 기도와 말씀 그리고 섬김의 시간을 보내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했다.어느 날 사업에 성공한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형은 가진 것도 없는데 무척 행복해 보인다. 형이 믿는 하나님, 나에게도 가르쳐줘.”“너는 예수님 믿지 마. 예수님 믿으면 힘들어, 그냥 지금처럼 살아.돈 있겠다, 네가 좋아하는 거 마음껏 즐기며

2015.2

매일 ‘일터예배’를 드리며 권홍헤어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권홍 대표의 ‘솔직·열렬한’ 삶 속 신앙고백.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후 첫 번째 테스트가 찾아왔다. 그분은 나에게 미용직업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눈물로 주님께서 원하시면 내려놓겠다고 고백했다.그 다음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또 눈물로 어머니를 내려놓겠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유학 중 연탄가스 중독으로 치매를 얻게 되신 어머니와 중풍을

2015.1

매일 ‘일터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기업으로 권홍헤어를 운영하고 있는 권홍 대표의 ‘솔직·열렬한’ 삶 속 신앙고백.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였다. 14살까지 교회를 가본 적도, 신의 존재를 믿어본 적도 없었던 나는 병원 기도실에서 하나님과 일종의 거래를 했다.“하나님, 어머니를 살려주시면 매주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그 날 이후 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고, 어머니는 회복하게 되셨다.그런데 영국 유학시절 또 다시

2014.12

매일 ‘일터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기업으로 권홍헤어를 운영하고 있는 권홍 대표의 ‘솔직·열렬한’ 삶 속 신앙고백.일본 유학 때도 일본어를 잘 못해 교수에게 늘 구박을 당했는데, 영국으로 간 유학에서도 언어 때문에 아카데미에 가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듣기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사투리 때문에 발음도 부정확했으며, 공부를 해도 언어가 전혀 늘지 않았다. 집에 오면 한국사람, 교회가도 한국사람,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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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터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기업으로 권홍헤어를 운영하고 있는 권홍 대표의 ‘솔직·열렬한’ 삶 속 신앙고백.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미용 유학을 결심하니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할 수준의 미용기술이 필요했다.그래서 1년 안에 3년 경력의 미용사 수준이 되는 것을 목표로 노력했다.그렇게 1년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처음으로 한 일은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 할 미용실을

2014.10

청소년 시절, 유난히 공부를 싫어했습니다. 친구들과 더불어 노는 것만 좋았습니다. 그러다 시험 때가 오면 ‘학교에 불이 났으면, 전쟁이 났으면’하고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잘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미래의 계획도 생각할줄 몰랐습니다.아버지가 길거리에서 구두수선을 하셨기에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다리 장애가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형편도 안 되었지만 공부로 따져도 어떤 대학에 들어갈 실력도 못 되었습니다.

2014.8

얼마 전, 모처럼 한강 자전거 도로를 딸과 함께 달렸습니다. 길가의 풀 냄새가 너무 좋아 순간적으로 어릴 적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동네 어귀로 들어가는 골목길에는 항상 밥 냄새와 국 냄새가 스며 나왔습니다. 그 길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햇살은 따끈했지만 자전거 타기에는 무척이나 좋은 날씨였습니다. 내 자전거는 전기 자전거라 페달을 밟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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